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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다

킹메이커 13 [썰~연재]

리챠드71 2021. 3. 1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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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BEAR

 

 

 이슬이도 박 씨 집안사람임을 어머니, 헌규가 함께하여 확인하였고 그 덕에 헌규 역시 박 씨 집안사람임을 재차 확인하였다. 이슬이의 무공을 확인하고 며칠이 지났지만 생각보다 공매 일자가 안 잡혀 사장님하고 DJ 형과의 전반적인 사업 얘기만 있을 뿐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헌규는 다른 일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따분함을 달래려 충진이 가게에 몇 번 더 갔다.

 

 비디오 가게 안에는 살림방도 있어 여차 하면 잘 수 있는 구조였기에 헌규는 자고 오는 날도 있었다. 앞으로의 음악사업을 위해 헌규는 최신 트렌드도 알아보고 노래나 패션 영화 등을 섭렵할 겸 신작 비디오를 섭렵했다. 이름하여 잘 나가는 비디오를 보면 요즘 소비자의 요구를 읽을 수 있었다. 말이 핑계지 군대에서 못 보던 영화가 있어 비디오로 몽땅 찾아봤다.

 

 

 당시 비디오 대여 순위 랭크에 들어 있었고 한국 영하로는 최민수 심혜진의 ‘결혼 이야기’가 신혼부부들에게 잘 팔렸지만 그래도 대여 1위는 샤론스톤의 ‘원초적 본능’이었다. 말 그대로 비디오테이프가 3~4개가 자리를 지키고 있지를 않았고 대여하고 들어오면 마그네틱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였다. 사실 헌규도 이건 몇 번을 돌려 봤다. 취조실에서 도도하게 담배 꼬라 물고 다리 꼬는 샤론 스톤! 뭔가가 보일 듯 말한… 헌규 역시 집요함이 있어 사장님 가게에서 해적판을 찾으려고 애써봤지만 거기서는 단종되어 원판을 다시 떠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제대만 일찍 했어도 확인 할 수 있었는데 ㅠㅜ” 

 

 

출처- 샤론스톤 주연의 영화 원초적 본능의 한 장면 

 

 헌규는 ‘빨간 비디오(속칭 야한 비디오)'를 볼만큼 봤고 팔 만큼 팔아서 이제는 그다지 댕기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인터넷 속도가 빠르지 않아 해외 영화를 다운로드하기가 힘들어 젊은 남녀들이 가끔 찾는 사람이 많았다. 발랑 까진 중삐리, 고삐리, 대학생, 신혼에 노총각까지 연령대는 다양했다. 하지만 비디오 대여점에서도 관할 단속반에 걸리면 벌금에 영업 정지였기에 숨겨 두곤 했다. 

 

 한 번은 충진이가 잠시 자리 비운다고 헌규에게 가게를 맡겼을 때다. 멀건 대 낮에 옷을 걸친 건지 안 걸친 건지 외투를 채우지도 않고 사이사이로 보일 듯 말 듯 한 옷차림의 젊은 아줌마가 들어왔다. 

 

“사장님 어디 가셨나 보네~”

 

“아예~ 잠시 볼 일이 있어서요.”

 

“..."

 

 헌규는 영등포 역 앞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익히 단련되었고 전직 세운 상가의 다양한 고객을 상대하였기에 상대를 편하게 대해 주었다. 젊은 아줌마는 헌규를 처다 보며 대여순위 포스터를 보고 액션과 로맨스, 외화, 한국 영화 쪽을 살펴보기만 했다.

 

“혹시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 … "

 

“(그거 찾는구먼 ㅎㅎㅎ)”

 

 젊은 아줌마가 대여점 안을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빙빙 돌고 있는 사이 다른 손님이 들어왔고 젊은 아줌마는 손님이 테이프를 골라 가게를 나갈 때까지 이거 저거 비디오를 꺼내 보기만 했다. 헌규는 젊은 아줌마에서 풍기는 알코올 냄새와 급하게 뭔가를 찾으러 나온 듯 한 옷차림에서, 그리고 다른 손님이 빠져나가길 기다린 듯 한 긴장감에서 직감적으로 그 아줌마의 욕망을 확신했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 사장 친구? 결혼은? 뭘 알긴 알고 물어보는 거야?”

 

 젊은 아줌마는 헌규를 위아래 스캔을 하고는 벨트 아래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아마도 자신이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헌규에게 암시하는 거 같았다.

 

"나, 그거 찾거든~ 어여 가져와~"

 

 헌규는 젊은 아줌마의 도발에 아래에 힘을 주고는 어설프게 걸친 얇은 카디건 사이를 응시하며 속으로 말했다.

 

“아줌마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본 거 다 합쳐도 내가 군대 가기 전까지 본 것에 비하면 새 X의 거시기거든, 그냥 그거 찾는다고 말하면 도와주고! ㅎㅎㅎ”

 

 라고 말이다. 사실 충진이가 외출하면서 넌지시 헌규에게 얘기를 해주고 갔었다. 남편 분이 밤에 일하고 아침까지 남편이 귀가하기를 기다리는 외로운 젊은 아줌마에 대하여. 초등학교 다니는 애가 있어 이른 시간에 술 걸치고 분위기 잡으려고 허겁지겁 비디오 가게로 날아오는 열정과 욕망을 조절 못하는 아줌마!

 

 헌규는 그간 경험을 살려 충진이가 얘기하지도 않은 빨간 보물을 찾아봤다. 벽장 맨 아래, 손님들이 잘 찾지 않는 다큐멘터리 장르 쪽 비디오를 살펴보다 먼지가 쌓인 케이스와 다르게 손가락 살짝 걸칠 만큼 먼지가 지워진 케이스를 발견했다.

 

‘BEAR’ 

 

 말 그대로 주인공이 곰이다. 진짜 곰! 대사도 없고 그냥 곰이 “우~어억!!” 하고 울면서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며 사계절을 보내는 일대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이걸 누가 돈 주고 보겠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헌규는 젊은 아줌마가 대여 포스터를 보는 사이 꺼내 열어 보고 깜짝 놀랐다. 헐~ ‘신비의 세계’란 라벨이 붙은 비디오 테이프!!!! 헌규가 너무도 많이 보던 제목이었다. 

 

“ 이런 쓰바라지, 이게 여기까지 굴러와 있네. ㅎㅎㅎ”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원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원일기는 정말 전원일기다. 헌규는 군에 가기 전에 세운 상가에 중삐리 이하 놈들이 빨간 비디오 사러 오면 교육 차원에서 정말 전원일기를 녹화 떠서 주곤 했다. 그걸 돈 주고 사 희희낙락 즐거워하는 중삐리들! 물론 부모님이 비운 사이 집에 친구들을 불러 재생하는 순간 세상 욕이란 욕을 다했겠지만.ㅎㅎㅎ 

 

“손님, 혹시… 이거~”

 

“늦었으니까 빨리 아무거나 줘~ 밥 올리고 와서 빨리 들어가야 한다고!”

 

“죄송합니다. 여기…”

 

 젊은 아줌마는 헌규가 건네주는 검정 비닐봉지를 뺏어 들며 1만원 지폐를 테이블에 던지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부랴부랴 뛰쳐나갔다. 

 

“잘 큰 총각! 잔돈은 예치하는 걸로~ “

 

“잘 큰???”

 

 젊은 아줌마는 ‘신비의 세계’를 들고 슬리퍼인지 구두인지 알 수 없는 빨간 샌들을 끌고 가게를 빠져나갔다. 얼마 안 되어 충진이가 돌아와서 헌규는 젊은 아줌마에 대한 얘기와 ‘BEAR’ 비디오 테이프에 대해 얘기해 줬다. 충진이는 빨간 비디오가 거기 있었는지 어떻게 알았냐며 헌규에게 물었고 헌규는 군 입대 전 비밀스런 경력을 충진이에게 대하소설을 쓰듯 설명했다.

 

 사실 헌규가 세운 상가에서 그런 것까지 팔고 한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님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 있는 엄마가 알면 가만 두었겠나, 그저 주변에는 석주에게 말한 것처럼 문화사업에 종사하는 걸로 안다. 물론 눈치 빠른 승준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며칠간의 비디오 탐구생활이 끝날 때쯤 사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출처- 영화 곰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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