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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다

킹메이커 10 [썰~연재]

리챠드71 2021. 3. 8.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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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지구레코드

 

 

 술김인지 홧김인지 사장님은 토요일에 가게를 접었고 그 덕분에 헌규와 DJ 형은 사장님 차에 올라타 서울을 벗어났다. 홍제동인지 홍은동인지 고개를 너머 북한산 국립공원 입구를 보며 서울을 벗어났다. 헌규는 기분이 좋았다.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서울을 벗어날 때, 비행기를 타고 공항을 이륙해서 지상의 풍경을 보는 기분. 사장님은 한 참을 달려 가본 적 있는, 어쩜 단골(?) 집 같은 민박집에 차를 세웠다. 지금으로 따지면 고기 팔아주고 방 빌려주고 하는 펜션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일영? 아마도 송추나 일영 근처였다. 훗날에는 길이 잘 포장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절라 굽이진 길이였다. 그곳에 가는 동안 여러 공장들이 도로를 넘보며 서로 위세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중에 지구레코드가 있었는데 당시만 해도 지구레코드는 대한민국의 넘버원 음반 회사였다. 국내 최고! 가요톱10 골든컵 제도를 만든 조용필이 몸 담은 레코드사니까 이해하기 쉬울 거다. 

 

 

“사장님! 저거 지구레코드사 아니에요?”

 

“촌스럽기는, 티 낼래?”

 

“전 레코드사 처음 봐서요. 대한민국의 넘버 원이잖아요! 엄청 크네요.”

 

“넘버 원? 대단한 음반 회사지. 이쪽에서는 공룡이랄까?”

 

 참고로 당시는 기획사에 소속된 가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레코드사, 그니까 음반회사가 가수에 대한 모든 저작권을 갖고 있을 때다. 물론 저작권이 국내에 자리 잡히고 십 수년이 지나면서 기획사와 음반사의 지위는 역전되었지만.

 

외곽으로 빠지는 우리 차는 가다 멈춤을 반복하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중천을 지나가고 있었다.

 

“자~자~ 이왕 놀러 온 거 기분 전환도 할 겸 놀아 보자고~”

 

 사장님은 준비한 고기를 굽고, DJ 형은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헌규는 고기 굽는 것도 도왔다, 노래도 불러다, 술도 따라가며 차츰 민간인 모습을 찾고 있었다. 헌규는 그렇게 술과 고기로 속을 채우다 해가 질 무렵은 모닥불을 지폈고 자연스레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사장님! 노래 한 곡 하세요~”

 

 헌규가 사장님에게 노래를 권했지만 DJ 형은 헌규를 보며 고개를 절래 절래 저었다. 사장님은 헌규의 노래 신청에 소주 한 잔을 들이켜시더니 형과 억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렀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 접어 다져온 행복
여민 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

 

 

 헌규도 어릴 적 듣던 노래였다. 아버지가 일직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은 있다. 헌규가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을 잠시 한 반면 DJ 형은 조금은 질린 듯한 얼굴을 장난스레 내 비쳤다.

 

“형님~ 고마하세요. 노래가 그 노래밖에 없어요?”

 

“사장님 18번이에요? 사모님 엄청 좋으시겠다. 애처가신가요?

 

“헌규야~ 넌 아직 어려서 몰라… 나도 잘 모르는데 네가 사장님을 어찌 알겠냐!”

 

 한 곡씩 노래를 부르며 잔을 기울이다 보니 헌규는 시름시름 고개를 떨구었고 꾸벅이며 얼마 남지 않은 모닥불을 응시하였고 사장님과 DJ형의 대화는 고조에 이르렀다.

 

“이번에 공매하는 거… 그 기계 아~ 쓰려~”

 

“사장님, 우리는 공매 참여를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러니까 그만 잊으세요.”

 

“성진아, 네가 공매 참여하면 안 되냐? 그 기계 얼마를 들였는데, 그리고 지금은 구하지도 못해!”

 

“저도 이미 얼굴이 팔려 참여를 할 수 없는 거 아시잖아요. 범죄 가담자나 채무 당사자는 공매에 참여 못한다니까요.”

 

 사장님과 DJ형은 서로의 처지를 한탄하며 마지막 남은 술을 가져왔다. 헌규는 귓가에 들리는 두 분의 안타까운 울부짖음에 자극받아 충혈된 눈에 힘을 더 주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취한 탓에 혀는 꼬였지만 의중은 분명히 전달하려 했다.

 

“사장님! 그거 제가 참여하면 안 돼요? 경맨지 공맨지 하는 거요!”

 

“네가?”

 

“그래! 너라면 당시 압류당할 때 공장에 없었고 우리 직원도 아니었고 관할 공무원도 너의 이름을 모르니까,,, 넌 어떻게 생각하냐? 성진아!”

 

DJ형도 사장님의 말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근데 헌규야~ 너, 술 취해서 지금 막 던지는 거 아니지? 그거 돈도 돈이지만 한 번 시작하면 너도 뭔가를 걸어야 할 거야!”

 

“한 번 시작이라니요? 뭘 한 번 시작해요?”

 

 듣고 있던 DJ 형은 헌규에게 각오를 확인하는 건지 아예 싹을 잘라 이 바닥에 발을 디디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알쏭달쏭한 겁을 주며 말했다.

 

“이노무시키! 어른이 얘기할 때 뭐 들었어? 그걸로 가요, 팝송을 불법으로 복제해서 유통시켰다니까! 그니까 쉽게 말해 빨간 줄 각오하라는 거지!”

 

헌규는 불법음반 제작이라는 말에 놀랐지만 그 놀람과 걱정은 갈증을 달래며 들이킨 물과 함께 삼켜 버렸다.

 

“형님! 전 걸 것이라곤 거시기 두 알 밖에 없어요. 그리고 군 입대 전에도 그 포르노에 빽판에 팔 거 다 팔고 그랬는데 큰 차이 있겠어요? 거기서 거기지! 그리고 내가 승준이하고 석주에게는 좀 돌려줘야 할 빚이 있거든요. 그니까 나도 껴 주세요!”

 

“알았다 알았어. 아직 며칠 시간이 있으니까 나도 한 번 생각해 보고.”

 

“그래, 헌규야 사장님 말씀이 맞지만… (슬쩍 분위기를 살피더니)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

 

“성진이 너 무슨 말하는 거야?”

 

“형님! 사실 톡 까놓고 말해서 빽판이나 포르노 테이프나 뭐가 달라요? 된장이나 고추장이지!”

 

“그래도 괜히 나 때문에 아들 같은 헌규까지 짝퉁 인생 만드는 거 아닌가 죄책감 들어서 그러지, 하여간 나중에 맨 정신으로 다시 얘기하자!”

 

 사장님과 DJ 형의 대화가 얼핏 야바위꾼이 호구를 낚아 채는 듯 했지만 취중이라 진심을 파악하기는 어려웠다. 헌규가 볼 일이 급해 풀밭에 거름을 주고 온 사이 DJ 형은 방에서 절라 코를 골며 꿈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셋은 한 방에 씻지도 않고 잤다. 사실 당시는 지금처럼 씻는 환경이 잘 조성되어 있지 않아 수컷들끼리 오면 구린 내가 심한 상태로 자곤 했다. 헌규는 새벽녘에 거시기가 발끈하여 좌로 굴러 우로 굴러하며 사타구니에 손을 비벼대다 참을 수 없었는지 잠에서 깼다. 오줌이 마렵기도 한 것도 있지만 헌규가 아직은 젊다는 증거였다. 헌규는 화장실 가기도 귀찮아서다시 한번 풀밭에다 노란 액체를 시원하게 쏘아 냈다.

 

출처- 영화 가루지기의 한 장면 

 

“쏴~~~~~~~~~~~~~~~~~~~~~~~~~~~~~”

 

 길게도 기~일게도 분출되는 헌규의 굵은 물줄기는 밤이슬이 내려앉은 풀들을 한 방향으로 눕혀 버렸다. 이를 유심히 침 흘리며 바라보던 한 여인!

 

“깜짝이야! 아줌마, 누구세요?”

 

“누구긴 누구야! 여기 주인이지! 그런데 총각은 거름을 자주 주네~ 아까도 시원하게 주더니 말이야~ 근데 꼭 풀 밭에만 거름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네? 뭔 거름이요? 근데 아까 제가 볼 일 본건 어떻게 아셨어요?”

 

“어떻게 아냐고? 오늘 반찬 하려고 저기 밭에서 감자 캐고 있었지! 우리 밭에 감자가 꽤나 먹음직스럽거든, 그런데 총각 감자도 큼직한 것이 아주 좋아 보이던데! 총각은 하루 더 쉬고 가지 그래~”

 

 이상하게도 헌규에게는 아줌마들이 자꾸 꼬이는 거 같다. 아니면 박가 주변에 꼬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여간 헌규는 주인아줌마의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호객을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헌규는 방에 들어왔지만 입 안이 근질근질하여 문을 슬며시 열고 아줌마가 보이지 않은 틈을 밖으로 나왔다. 역시 담배는 새벽 담배다. 특히나 민간인이 되어 새벽 공기를 들이마시며 내뿜는 담배 맛은 헌규를 더욱 황홀하게 만들었다. 헌규는 담배 연기를 하늘로 뿜으며 사장님과 나눈 얘기를 생각했다. 순간 씨댕이 들을 떠 올랐다.

 

“위험부담? (불법) 음반 제작? 승준이와 석주 탱이!!! 참, 현주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물론 일반인이라면 그렇겠지만 막 군대를 제대한 대한의 남자라면 뭐든 자신 있어했기에 헌규 또한 그리 두렵지 않았다. 걱정해 주신 사장님이나 DJ형님이 오히려 고마웠고 입대하기 전 해준 것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어쩜 당시 사회 초년생이던 헌규에게 동생이나 가족처럼 잘 대해준 것도 있지 않은가 하며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자자~ 라면 드시면서 해장 좀 하세요~”

 

 헌규는 제일 먼저 일어나 술자리를 정리했고 라면을 끓여 해장을 도왔다. 그렇게 아침 겸 해장을 한 후 믹스 커피로 입가심을 했다. 사장님이 커피를 마시며 헌규에게 비장하게 물었다.

 

“헌규야~ 진짜 해 볼래?”

 

“네! 새벽에 잠시 일어나서 생각했었는데 정말 하고 싶어요. 제가 음악을 실제 연주하는 것에는 소질이 없지만 보고 들은 것이 있어 딴 사람보다는 나을 것이라 생각해요. 게다가 입대 전에 사장님 가게에서 쌓은 노하우도 있잖아요.”

 

 사장님과 DJ형은 헌규의 의견을 받아 주었고 그렇게 한 식구가 되었다. 누구의 배신 배반도 허락해서는 안 되는 식구가 된 것이다. 사장님은 돈을, DJ 형은 음원과 리마스터링을 헌규는 유통을 책임지는 삼위일체의 길거리 음반 제작자!

 

 이런 생각에 헌규는 서울로 들어오는 길이 막혔지만 흥분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또한 헌규를 서울로 보내는 민박집주인 아줌마의 아쉬움은 일영 계곡에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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