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수다

킹메이커 9 [썰~연재]

리챠드71 2021. 3.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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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민간인

 

 국방부 시계도 가긴 간다. 전역! 헌규와 동기들은 사단장님께 전역 신고를 한 후 동송을 출발하여 2시간을 달려 수유 역에 내렸다. 그 사이 수유역에는 금다방이 생겼다. 수다방, 목다방, 금다방까지… 헌규 동기생들은 다방 안에 모여 서로에게 앞 날을 축하하며 달달 커피로 지난 30개월 고생한 자신들을 위로해 주었다.

 

 

 

“여기 주문이요!”

 

“뭐야! 주문 안 받아! 마담!”

 

 헌규는 오봉 누님들의 노골적인 스킨십을 잔뜩 기대했지만 누님들은 갓 민간인이 된 군바리들을 지나가는 똥개 보 듯했다. 모자에 달린 예비군 마크. 그렇다, 이 마크를 달면 이제 군인이 아니다. 즉, 수다방은 물론이고 목다방 금다방까지 다시는 돌아올 일 없이 고향으로 내려간다는 것이기에 누님들은 굳이 손 끝 뱀의 혀로 수컷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서비스를 할 이유가 없었다. 

 

“오양아~ 가서 주문 좀 받아”

 

“언니! 나 일하고 있는 거 안 보여?언니가 가~”

 

 수다방에서 제일 핫한 오양은 옆 테이블에서 휴가나온 군인들을 뱀과 같은 손으로 휘젓고 있었다. 헌규의 시선은 오양이 앉은 테이블을 향해 있었지만 이내 헌규의 시선에 큰 엄마에 가까운 마담 언니가 풀 샷으로 들어왔다.

 

“삼촌들 전역? 그동안 고생했네, 뭐~ 주문해야지?”

 

마담의 영업용 인사 말에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테이블 한쪽에서 튀어나왔다.

 

“커피~”

 

“어머, 이제 다시 민간인으로 돌아왔는데 왜들 이리 축 처져 있어~ 누나가 오렌지 주스 한 잔 마시며 같이 놀아 줄까?"

 

“아뇨! 저희 금방 마시고 갈거라.. “

 

헌규가 마담의 추가 주문에 제동을 걸었다.

 

“삼촌도~ 왜? 오양은 되고 난 안돼? 삼촌이 몰라서 그러지 여기서 내가 세운 군바리의 거시기가 일렬종대로 부산까지야~ 민간인 축하 기념으로 함 느끼게 해 줄까? ”

 

“커피나 가져와요!”

 

“쌔리들~ 간다 가~”

 

 헌규와 전역 동기들은 수다방의 마지막 주문을 마치고 서로에게 연락처를 주고 다방을 나와 서울역으로 향했다. 물론 헌규는 서울역에서 환승해서  영등포 역에 가려했지만 반대 방향인 종로3가역으로 바꿔 탔다. 종로 3가에 내리자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큼지막한 스피커를 얹은 리어카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리어카 앞에는 젊은 청춘 남녀들이 손에 서너 개의 카세트테이프를 들고 무엇을 살까 고민하고 있었다. 여기도 리어카, 저기도 리어카. 시민을 위해 인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리어카 상인들을 위해 인도가 있는 거 같았다. 헌규는 사람들과 리어카를 피해 반가운 얼굴을 떠 올리며 세운상가 2층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헌규의 설렘과 달리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온갖 기계들과 음반 영상물로 가득 찬 점포들 사이에 빈 점포가 하나 둘 보였다. 장사가 안되어 문을 닫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하여간 셔터가 내려진 점포가 많았다. 헌규는 설마 하는 맘으로 일하던 2층 점포로 가는 코너를 돌아 계단을 올라갔다. 사장님의 그늘이 드리워진 얼굴이 가게를 누르고 있었다.

 

“필승!!! 병장 박헌규 전역을 명 받았기에 사장님께 신고합니다. 필승!!!!!!“

 

사장님은 애써 웃으며 쿠션이 꺼진 낡은 의자에서 일어나 헌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사장님의 손은 홀로 가게를 돌본 탓에 예전과 달리 많이 거칠었다. 이내 사장님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잠시 후 DJ 형이 들어왔다.

 

“야~ 박 병장! 전역 축하해~~”

 

“필승!!!”

 

“필승은 뭔 필승! 이제 민간인이 되었는데~ 고생했다 헌규야~”

 

 DJ 형도 예전과 달리 핸섬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춤 꾼이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것과 같이 뭔가가 허전해 보이고 기운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말빨은 여전했다. 사장님과 DJ형은 일찍 점포 문을 닫고 을지로 골목으로 걸어갔고 헌규는 뒤를 따랐다. 어깨에 걸친 공수 마크가 붙은 전역 가방이 왜 이리 촌스러워 보이는지 짜증 낼 시간도 없이 사장과 DJ형은 술 집에 도착했다. 세운상가와 을지로 골목은 침 뱉으면 닿을만한 거리다.  

 

 

 이래서 헌규의 전역 축하 파티(?)는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한 잔, 한 병 두꺼비를 잡아먹는 사이 헌규의 전역 파티는 한숨과 간헐적 흘러나오는 욕으로 소주잔을 채웠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헌규가 휴가 복귀한 후 사장님과 DJ형이 카세트테이프 불법 복제하는 사업을 한 것이었다. 이름하여 인기가요 모음곡, 최신 히트가요, 최신 영화음악, 해외 팝송까지를 선별해서 카세트테이프로 담아 유통했던 것이다. 초반은 잘 풀렸다고 했다. 

  

 사장님이 일제 카세트테이프 멀티복사기를 몇 대 구입한 데다 을지로 쪽 인쇄업체를 잘 알고 있기에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했다. DJ형도 자신의 주업인 곡 선별을 했고  승준이도 초반엔 시키는 대로 판매망을 잘 관리하여 짭짭하게 돈 맛을 보았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아니 어쩌면 헌규는 예상했던 것에서 일이 터진 것이다.

 

사진의 정보 내용은 이 글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그러니까~ 너무 믿었어 우리가. 검은 머리 짐승은 거두는 것이 아닌데. 나이가 어려 찌든 어른들과 다르다 생각한 것이 잘못이야. 뭐, 의리도 없고 약어 빠진 놈이란 걸 우리만 몰랐던 거지.”

 

 사장님은 DJ형에게 화풀이를 하는 건지 자신을 원망하는 건지 계속 누군가를 술자리에 소환하는 듯했다. DJ형도 쓴 잔을 들이켜고는 헌규에게 소주를 따르라 한 후 죄송함을 드러냈다.

 

“형님. 제가 사람 볼 줄 몰랐던 거죠. 형님 잘못 아니에요. 국빈관 사장이 붙잡는 바람에 거기에 메여 시간을 내기 어려워 승준이에게 관리를 모두 맡긴 제 잘 못이 크죠.”

 

그렇다. 쉽게 말해 승준이가 사장과 DJ 형에게 배반, 배신 행위를 한 것이다.

 

출처- 영화 넘버3의 한 장면 

 

 

헌규는 소주 한 잔을 벌컥 입에 틀어 넣고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형님! 승준이가 그랬어요? 개쌔리!!! 어휴~ 내 그 자식, 내 깔 낚아챌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니 깔? 왜 발 불편해?”

 

사장님은 술이 취한 건지 ‘깔’ 이란 은어를 모르는 건지 헌규의 흥분에 떨떠름한 질문을 했다.

 

“아~ 참! 제가 (DJ) 형님에게 내 여자 친구 얘기 안 했었죠? 에휴~ 내 잘못도 크네요. 미리 그런 놈이란 걸 얘기했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무관심했네요. 죄송합니다.” 

 

“야~ 군바리였던 네가 뭔 잘 못이 있겠냐~ 그런 놈 동생이랍시고 감싸 안아 주었던 내가 병신이지.”

 

사장님은 슬슬 취기가 오르며 DJ 형에게 물었다.

 

“근데 경매가 언제라고 했지?”

 

“형님~ 경매가 아니라 공매라니까요~”

 

헌규도 다시 두 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뭔 공매요?”

 

 헌규는 공매가 뭔지 몰라 물었고, DJ 형은 관공서나 국가, 근저당권자 같은 소유권 가진 금융회사 등이 자체적으로 압류한 물품을 경매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뭐 쉽게 말해 아는 사람들만 모이는 경매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헌규는 DJ 형의 설명을 빠르게 이해함과 동시에 되물었다.

 

“근데 뭘 공매하는 건데요?”

 

사장님은 더 이상 화가 치밀어 말하기 싫었는지 술잔을 연거푸 비웠고 DJ형은 헌규에게 술잔을 권하며 말을 이었다.

 

“일본에서 건너온 카세트 테이프 멀티복사기. 그거 단속반에 뺏겼거든.”

 

DJ 형의 얘기에 사장님은 빈 병을 흔들었고 헌규는 주인 아줌마에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한 후 DJ 형에게 물었다.

 

“아니, 형님~ 그러니까 압류를 당했다고요? 근데 단속반이 어떻게 알고 덮친 거죠?”

 

 순간 헌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이 DJ 형의 귀에 꽂히기도 전에 석주를 떠 올렸다. 그리고 승준이를 연결시켰다. 헌규는 화가 치밀어 주먹을 불끈 쥐고는 술병이 놓인 테이블을 내려쳤다.

 

“너~ 왜 그래! 영창 가고 싶어!!!”

 

“야! 야~ 이 노마 이제 군바리 아냐~ 민간인이라고! 모자에 예비군 마크 있잖아!”

 

 사장님과 DJ 형은 헌규가 왜 화가 났는지 알지 못했다. 사장님은 그만 술자리를 접고 일어나자고 했고 DJ 형도 순순히 동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을지로 골목을 빠져나와 종로 방향으로 걸었다. 헌규는 컴컴한 골목의 불 켜진 구멍가게를 들러 음료수 두 개를 사 와 사장님과 DJ 형에게 공손히 뚜껑을 제거하여 드렸다.

 

“요놈~ 이제 민간인 다 되었네, 사회생활 적응하는 거 보소~~~”

 

“형님~ 요놈 요놈 하지 마세요~ 듣는 요놈 기분 생각도 하셔야죠~”

 

사장님은 DJ 형에게 핀잔을 듣더니 주말에 뭐하냐고 물었다. DJ 형은 하루 쉬기로 했다고 했다.

 

“야~ 느! 하고 너, 이번 주말에 가까운 계곡으로 놀러 갈 거니까 그리 알아!! 시간 벼 놔~~, 우리 헌규가 민간인으로 부활했는데 축하해 줘야지~~ 내가 쏜다, 쏴~ 뭐 인생 뭐 있어! 월세 아님 전세지! 찢어진 빤쓰 똥 빤스다~ 썅~~~~~”

 

 헌규는 마땅히 할 일도 없었기에 사장님의 제안을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그래도 헌규의 군대 전역을 축하해주는 사람은 둘 뿐이었다. 헌규는 헤어진 후 영등포로 가는 전철을 탔고 30분도 안되어 역 밖으로 나왔다. 그 사이 역 광장에는 어둠이 깔렸다. 영등포 역은 군대 가기 전과 달리 고층건물에 백화점도 입점했고, 극장도 들어서 있었다. 그니까~ 쫌, 많이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하지만 변화란 것은 그리 쉽고 빠르게 오지 않았다. 조금씩 비틀 거리며 걷는 헌규에게 웬 아줌마가 뒤에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머~ 군인이야!!! 그럼 잠시 쉬었다 가야지~ 예쁜 애들도 많은데~~”

 

“아줌마~ 됐어요, 저 집이 저~오~쪽 이에요”

 

“군인이 이러면 쓰나, 나라에 충성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지역 경제에 이바지해야지, 그니까 잠시 얼굴만 보고가~ 안 잡는다니까~ ~”

 

 이 곳 영업 노하우인데 힘없는 여자도 남자의 허리띠 버클을 위에서 안으로 집어넣어 한 손으로 꽉 잡으면 못 도망치게 할 수 있다. 보통 이런 후 가격 흥정을 시작한다.

 

 헌규는 이제 군인이 아니고 지역 주민이라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아줌마는 쉽사리 헌규의 허리 벨트를 놓아주지 않았다. 헌규는 결국 그를 소환했다.

 

“아줌마! 저 헌용이 형 동생이요!! 저~쪽 사는 박헌용!! 동네 주민끼리 이러시면 안 되죠. 알죠, 우리 형!!!!!”

 

 아줌마는 형 이름을 듣고서야 환한 얼굴을 띄우며 무슨 상상을 했는지 헌규의 버클을 자신의 주술에서 풀어 주었다. 헌규는 아줌마가 형 이름에 왜 얼굴이 환해졌는지 지금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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